추미애 노무현 탄핵 찬성 배경 훗날 발언 삼보일배 헌재 기각

2004년 봄, 새천년민주당 원내대표였던 추미애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졌어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새천년민주당이 아니라 열린우리당 소속이었는데, 같은 진보 진영 안에서도 정당이 갈라진 상황에서 벌어진 탄핵이라 정치권 안팎의 파장이 컸어요. 이 사건은 이후 추미애의 정치 인생 내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고, 본인 스스로도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입장을 밝혀왔어요.

탄핵 표결 당시 추미애의 입장

2004년 3월 탄핵소추안이 국회에 상정됐을 때, 새천년민주당 지도부 중 추미애는 처음에는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고 알려졌어요. 정치적 혼란과 국정 공백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게 본인의 설명이에요. 탄핵 찬성이 노무현 대통령의 구체적인 혐의 때문이 아니라, 정국 불안정에 대한 걱정에서 비롯됐다는 취지였어요.

하지만 실제 표결에서는 찬성표를 던졌어요.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안 상정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열어 강경한 태도를 보인 것이 표결 방향을 바꾸는 데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요. 추미애는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지켜본 뒤 도저히 반대할 수 없었다”는 취지로 심경을 밝힌 적이 있어요.

당시 탄핵소추안은 선거법 위반, 측근 비리, 국정 파탄 등을 사유로 제출됐고, 새천년민주당과 한나라당, 자유민주연합이 공동으로 찬성표를 모아 국회를 통과시켰어요. 추미애는 이 과정에서 새천년민주당 원내대표로서 당론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찬반을 둘러싼 내부 논의에도 깊이 관여했던 것으로 알려졌어요.

탄핵 사유를 둘러싼 발언

추미애는 이후 인터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사유에 대해 “그런 독설은 없었다”거나 “탄핵 사유를 나열하면 책 한 권 분량이 될 정도”라는 식의 표현을 쓴 적이 있어요. 이는 탄핵 표결 당시 여야가 제시했던 다양한 사유들을 회고하며 나온 발언으로, 정치적 수사가 섞인 발언이라는 평가도 있었어요.

이런 발언들은 시점에 따라 결이 다르게 해석됐어요. 탄핵 직후에는 정당성을 강조하는 뉘앙스가 강했다면, 시간이 흐른 뒤에는 후회와 반성의 색채가 짙어지는 흐름을 보였어요.

“내 인생 가장 큰 실수” 후회 발언

추미애는 2021년경 언론 인터뷰에서 노무현 탄핵 찬성을 “내 인생 가장 큰 실수”라고 표현했어요. 정치인으로서 스스로의 과거 선택을 이 정도로 강하게 자책한 사례는 흔치 않아서 당시에도 화제가 됐어요. 그는 탄핵 찬성이 결과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진보 진영에 큰 상처를 남겼다는 점을 언급하며 반성의 뜻을 전했어요.

이 발언은 탄핵 이후 십수 년이 지난 시점에 나온 것이어서, 정치인의 과거 판단이 시간이 흐른 뒤 어떻게 재평가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도 자주 인용돼요.

삼보일배 사죄 행보

추미애는 탄핵 찬성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삼보일배(세 걸음마다 한 번 절하는 행위)를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이는 단순한 말로 하는 사과를 넘어서 몸으로 직접 반성의 뜻을 표현한 상징적인 행보로 받아들여졌어요. 정치인이 과거 표결에 대해 이 정도로 신체적 행위를 동반한 사과를 하는 경우는 드물어서 언론에서도 크게 다뤄졌어요.

노무현시민센터 등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기리는 공간에서 열린 행사에 추미애가 참석해 추도사를 낭독한 사례도 있어요. 추도사에서 그는 탄핵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겪었을 고통을 언급하며 재차 사과의 뜻을 전했어요.

헌법재판소의 기각 결정

국회에서 가결된 탄핵소추안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갔고, 헌법재판소는 2004년 5월 14일 탄핵 심판 청구를 기각했어요. 노무현 대통령이 저지른 위법 행위가 대통령직을 박탈할 만큼 중대하지 않다는 취지의 판단이었어요. 이 결정으로 노무현 대통령은 탄핵소추 의결 이후 정지됐던 직무를 다시 수행하게 됐어요.

탄핵안 가결부터 헌재 기각까지 약 두 달간 대통령 권한은 고건 국무총리가 대행했고, 이 기간 동안 정치권은 극심한 갈등을 겪었어요. 국회를 통과시켰던 정당들은 이후 총선에서 국민 여론의 역풍을 맞기도 했어요.

탄핵 이후 정치권의 변화

노무현 탄핵 사태는 그해 4월 실시된 17대 총선 결과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줬어요. 탄핵을 주도했던 새천년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여론의 역풍을 맞았고, 반대로 열린우리당은 과반 의석을 확보하는 성과를 거뒀어요. 이 총선 결과는 탄핵에 대한 국민 여론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자주 인용돼요.

추미애는 이후 정계를 떠났다가 다시 복귀하는 과정을 거쳤고,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법무부 장관 등을 지내며 정치 활동을 이어갔어요. 노무현 탄핵 찬성 이력은 그가 진보 진영 내에서 정치 활동을 이어가는 동안 반복적으로 소환되는 과거사로 남아 있어요.

추미애의 노무현 탄핵 찬성은 표결 당시의 정치적 계산과 이후의 반성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사례예요. 정당 소속이 달랐던 두 정치인이 탄핵이라는 사건을 계기로 얽히고, 이후 사죄와 화해의 과정을 거친 정치사의 한 장면으로 기억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