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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환상 자전거길 종주 2일차 (모슬포항-쇠소깍)

2019년 5월 29일(수)

 

새벽 6시.

5명이 묵는 도미토리 방 안은 아직 고요하다.

방에서 조금 더 머무르다 바깥으로 나와보니 아침식사 준비로 분주하다. 언제부터 먹을 수 있을지 여쭤보니 지금 먹어도 된다고 한다. 안그래도 아침 일찍 일어나서 시장했던터라 바로 음식을 떠 나르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카레도 있다. 카레와 무말랭이, 소세지부침, 동그랑땡 등을 담다 보니 접시가 꽉 찬다.

 

 

 

마지막을 김치콩나물국을 담아와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설겆이 후 식사한 자리에 다시 앉아 어제 1일차의 기록을 마무리 했다.

그 사이에 사장님이 내려놓으신 커피가 다 됐다는 알람이 울린다. 얼른 가서 커피 한 잔을 받아온다. 

 

오늘 송악산~서귀포 코스는, 거리는 비교적 짧지만 가장 힘들다는 오르막이 있는 코스다.

어제가 막연한 두려움에 비교적 무난한 코스였다면, 오늘은 확실한 걱정이 있는 코스다. 뭐 어떻게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출발 준비를 마치고 커피 한잔을 더 하며, 불안한 마음을 다잡는다.

게스트하우스 직원에게 인사를 하고, 간단히 몸을 풀고 자전거에 오른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 송악산 인증센터로 향한다.

어제의 무난했던 코스에서 이어지는 코스라 그런지 경치도 좋고 아직은 패달이 가볍다.

꽤 경치 좋은 잔디밭에서 사진을 한장 찍는데, 어제 부터 자주 마주쳤던 네 분이 말을 걸어오셨다.

“어제 저희를 지나서 가신 분이죠? 어디서 주무셨어요?” 모슬포항에서 묵었다고 하니, 그들도 거기서 묵으셨다고 한다.

 

 

 

송악산인증센터에서 도장을 찍고 좀 달리다 보니 저 멀리 산방산이 보인다.

이 곳을 왼쪽으로 가로질러가는 코스가 그 유명한 오르막 코스라는 것을 느낌으로 바로 알 수 있었다.

왼편으로 돌아서 올라가라는 표지판으르 보니 이제 오르막이 실감되기 시작한다.

타고 올라가다 지치면 내려서 끌고 올라가고, 조금 완만해진다 싶으면 다시 타고 올라가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산방산을 거의 돌아 내려오기 시작한다.

극한 오르막의 고통 뒤에 따라오는 내리막의 시원함은 왜 이리도 짧은지, 중문까지 가는 길에 자전거를 끌고 갈 수 밖에 없는 오르막과, 보상과도 같은 내리막 길이 계속 이어진다.

 

어제 부터 오늘까지 자전거를 타면서 신기하면서도 의아한 점 하나가 머리에 맴돈다.  

오르막인 듯 한데 편안한 길이 있고, 내리막인듯 한데 힘든길이 있다.

진짜 내리막인데 맞바람이 세서 내려가기 어려운 길도 있었다.

삶도 그런 것 같다.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 줘야지 하면서 어느새 중문을 넘어 서귀포시로 향하기 시작했다. (점심을 먹으며 아이들에게 카톡을 보냈다.)

 

 

 

중문을 지나면서 (어제 점심식사 추천을 해 준) 친구 광섭이에게 카톡을 보낸다.

오늘은 어디서 점심을 먹으면 좋을지 물어본다.

자신이 운전중이니 잠시 후에 메시지 보내겠다고 하고는 바로 메시지가 온다. “행복한 시저”라는 곳이 좋겠다고, 이곳은 점심장사만 하니 늦지 않게 가야 한다고,

지도에서 보니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자전거 길에서 조금만 안쪽으로 들어가면 되는 곳이어서 대수롭지 않게 가 보기로 했다.

(이때는 몰랐었다. 그 길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길일지)

 

 

 

법환바당인증센터에서 도장을 찍고, “행복한 시저”를 찍어보니 2.9km 밖에 남지 않았다. 네이버지도가 자전거로 11분이면 갈 수 있다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조금만 가면 되겠지 하고 지도가 알려준 길로 가다 보니, 큰 사거리를 지나서 왼편에 큰 아파트단지를 끼고 올라가는 무지막지한 오르막이 끝이 안보이게 펼쳐진다. 선수들이 와서 업힐 훈련을 해도 좋을 듯 한 오르막 1.5km 코스를 목전에 두고 심각하게 고민한다. 오던길로 돌아가서 자전거길 부근 식당에서 먹을지, 아니면 까짓것 한 번 가 볼지.

가 보기로 했다.

땀이 비오듯 흘러내리고, 입에서 단내가 나고, 친구 욕이 자연스레 입 밖으로 흘러 나온다. ^^

 

 

 

그렇게 20분여를 자전거와 씨름하며 올라가 주택가 안쪽에 위치한 “행복한 시저”로 들어가니, 두 팀이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다.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그늘진 곳 대기석에서 가뿐 숨을 몰아쉰다.

그리고, 아까 생각했던 (오르막, 내리막)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카톡으로 보낸다.

친구 광섭이에 네가 알려준 곳 왔다가 숨넘어가는 줄 알았다고 카톡을 보낸다.

웃으며 답장을 하는데 왠지 일부러 골탕먹인 것 같기도 한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식사를 기다리며 오늘 묵을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한다. 오늘은 쇠소깍까지 달리기로 했다.

오늘은 도미토리 대신 2인실에 혼자 묵기로 했다. 코를 많이 골기도 하고, 너무 지친 탓에 방해받지 않고 쉬고 싶었다.

2인실에 3만원 하는 감사한 “바람코지게스트하우스”를 찾아서 온라인으로 예약을 마쳤다. (4일 동안 가장 가성비 좋았던 곳이다.)

 

"행복한 시저" 사장님으로 보이는 분이 문을 열고 나오더니 3824를 찾는다. 내 휴대폰 뒷자리 번호다.

혼자여도 2인분 이상부터 주문이 가능하다고 한다. 알고 왔으니 전혀 문제 안된다고 하니 알았다고 하시고 들어간다.

내 차례에 가게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으니, 아늑한 가정집 실내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시저가 학교를 갈때만 운영하는 식당"이라고 안내가 붙어있다. 사장님 내외가 운영하는 식당에 시저는 아이의 아명인가 보다 싶었다.

 

 

 

4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 인덕션에 큰 냄비 하나가 올라왔고, 그 안에는 김치와 돼지고기가 그득히 담겨있다. 졸여서 먹어야 한다는 안내를 받고 끓기 시작할 무렵 김치와 아채를 가위로 자르고, 조금 더 있다가 익은 고기를 가위로 자른다.

타이머를 가져다 주시더니 타이머가 울리면 그 때부터 먹기 시작하라 하신다.

그 사이 내 앞에는 밥과 밑반찬, 계란후라이, 부침개 등이 서빙돼 왔다.

 

먹는 방법은 잘 졸여진 짜글이를 국자로 떠서 밥에 덜어 비벼준다. 비벼진 밥을 한숟가락 떠서 깻잎에 싸서 먹어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먹어본다. 오~~~ 환상적인 맛이다.

아침부터 달렸고, 오르막 내리막을 끝없이 반복했고, 마지막 20분도 오르막과의 사투로 이미 지쳐버린 몸이어서 그런지 연료가 잘 들어간다.

친구 광섭이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너를 욕하면서 이곳에 왔는데, 음식을 먹으며 너를 용서한다.”

2인분 식사를 거뜬히 해치우고 다시 출발한다.

 

식사 전 20분간 사투를 벌이며 올라왔던 코스는 2분만에 되돌아 내려왔다.

누군가 이곳에 올라오는 라이더가 있었다면 위로의 말이라도 해 주고 싶었는데, 아무도 없다.

오늘 코스는 정말 좋지 않다.

다시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며 허벅지와 무릎을 괴롭힌다. 거의 도착할 무렵에는 이 길이 자전거길이 맞나 싶은 구간도 나온다.

 

 

힘들어도 사진 찍을때는 웃자
사진으로 제대로 설명되지 않지만 타고 내려오기 힘든 내리막을 겨우 겨우 내려온 후
2일차 단내나는 라이딩 종료

 

그렇게 한시간 가량을 달려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사장님과 아르바이트 직원이 반갑게 맞는다.

2층 숙소에 짐을 풀고 방 안에 있는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공용세탁기에 빨래를 돌리고 나니 하루가 마무리 된 듯 했다.

오늘 묵는곳에 식당이 하나 딸려 있는데, 낮에는 식당으로 저녁에는 게스트하우스 휴식공간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식당 안의 생맥주기계가 나를 유혹한다. 너무나 힘든 하루였기에 맥주 한잔이 더 간절했다.

과하게 점심을 먹기도 했고, 생맥주를 두 잔 정도 마시니 저녁생각이 없어진다.

 

 

 

 

세탁기에 빨래가 다 돌아가고 빨래줄에 널어놓으니, 따듯한 햇살 아래 빨래가 금방 뽀송뽀송해진다. 건조기에서 말리는 빨래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다시 가게로 돌아가서 맥주를 홀짝 거리며 밀려 있는 카톡과 메시지를 확인하고, 여기 저기 전화를 돌린다.

가족, 직장동료들, 성당 형님들.

특히 오늘 제주도에 도착하셔서 평대리에 자리 잡고 나를 초대해 주신 토마스 큰형님께는 죄송하다고 전화를 드렸다.

숙소에서 평대리까지 대중교통으로 2시간 거리인지라 도저히 가기 어려울 듯 하다고. 하루만 더 일찍 출발했어도 만나뵐 수 있었을텐데 아쉬움이 컸다.

 

스마트폰 너머로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졸음이 밀려든다. 8시30분. 그래 좀 일찍 자고 내일을 준비하자.

 

2층 숙소로 올라와서 꼭꼭 문을 걸어 잠그고 불을 끄고 눕는다.

내일 길은 경치도 좋고 편하다는 사장님 말이 잠시 떠오른다.

 

 

2일차 이동경로 : 모슬포항 - 송악산인증센터 - 법환바당인증센터 - 쇠소깍 (바람코지게스트하우스)